팝가수 시네이드 오코너 © AFP=뉴스1 |
아일랜드의 팝가수 시네이드 오코너가 향년 5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6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오코너의 유족은 “사랑하는 시네이드의 죽음을 알리게 되어 슬프다”라며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오코너의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고, 그의 재능은 비길 데가 없었다”며 “유족과 친구들, 그의 음악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지난 1966년 12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오코너는 1987년 1집 ‘더 라이언 앤드 더 코브라'(The Lion and the Cobra)로 데뷔했다. 이후 1990년 발매된 2집 ‘아이 두 낫 왓 아이 해븐트 갓'(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의 수록곡 ‘낫싱 컴페어스 투 유'(Nothing Compares 2 U’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 곡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오코너는 2014년까지 총 10장이 넘는 정규를 발매하면서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쳐왔다.
음악 활동 외에도 오코너는 남다른 저항 정신의 활동가로도 유명하다. 오코너는 전쟁, 가톨릭, 극단적 상업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행동가로 활동했으며, 1991년 미국 그래미 어워즈의 수상자가 되었지만 그래미 어워즈가 걸프전을 용인하는 위치에 있다며 수상을 거부해 화제를 모았다.
또한 오코너는 미국 우월주의를 상징한다며 미국 국가를 의무적으로 연주하는 공연장에서는 무대를 거부하는 행보를 이어왔으며, 1992년에는 미국 예능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출연해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는 퍼포먼스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기득권에 대한 반항 의식에 기반해 2018년 오코너는 가톨릭 신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고, 이름도 이슬람식인 ‘슈하다’로 개명했다.
오코너는 가정사와 정서적 문제에 있어서 부침을 겪기도 했다. 1999년 남편과 결별한 후 양육권과 관련된 분쟁으로 여러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던 오코너는 지난해 17살 셋째 아들 셰인이 실종되었다가 사망한 채 발견된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참척의 심경을 드러내면서 팬들의 걱정을 샀다.
또한 최근까지도 오코너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아들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준 사람이었다”라는 글을 게시하면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