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에 사상 최대 규모의 수주를 안긴 주인공은 ‘테슬라’로 확인됐다. 비밀 유지 조항에 따라 삼성전자는 거래 상대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위탁 생산 내용을 공개하면서다.
특히 머스크가 기존 거래업체인 대만 TSMC 대신 삼성전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제기된다. 모든 제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할 것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는 해석이 나온다.
머스크 “AI6 삼성 텍사스서 생산” 깜짝 발표
머스크는 27일(현지 시각)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X(옛 트위터)에 “삼성의 거대한 텍사스 신규 팹(fab·반도체 생산시설)이 테슬라 차세대 AI6 칩 생산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따낸 23조 원 규모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계약의 당사자가 테슬라임을 머스크가 스스로 밝힌 것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글로벌 대형기업으로부터 22조7648억 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28일 공시했다. 삼성전자가 따낸 단일 계약 중 역대 최고 수주고다. 다만 삼성전자는 경영상 비밀을 이유로 고객사 등 구체적 정보는 공개하진 않았다.
AI6 칩은 2나노미터(㎚) 공정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올 연말부터 2㎚ 공정 양산을 시작할 예정인데, 테슬라로부터 대형 계약을 따내면서 그간 애를 먹었던 선단 공정의 수율 및 품질 개선을 입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머스크는 “나는 (AI6 개발의)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현장을 둘러볼 것”이라며 조만간 테일러 공장을 직접 방문할 뜻도 밝혔다. 방문이 성사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직접 카운터파트로 나서 두 사람이 함께 공장을 둘러보는 그림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2023년 5월 머스크가 미국 실리콘밸리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 연구소를 찾았을 때도 반도체 부문(DS) 최고 경영진들과 함께 미국 출장길에 올라 직접 맞한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은 자율주행용 시스템 반도체 등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AI5 애리조나, AI6 테일러”…’트럼프 주파수’ 맞춘 머스크
반도체 업계는 테슬라가 차세대 AI칩 생산자로 삼성전자를 택한 이유에 주목한다. 양사의 협력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은 일부 있었지만, 파운드리 시장의 압도적 1위인 TSMC가 아닌 삼성전자에 AI6 생산 전량을 맡긴 건 예상하지 못한 ‘깜짝선물’이라는 평가다.
힌트는 ‘미국 생산’과 ‘대량 납품’이라는 두 조건을 삼성전자가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테일러공장은 삼성전자가 총 370억 달러(약 54조 원)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는 대규모 파운드리다. 진행률은 올 3월 기준 99.6%이며, 현재 2㎚ 공정 설비 반입이 진행 중이다. 가동 목표 시점은 2026년 말이다.
머스크는 이날 X에 “대만 TSMC는 최근 설계가 마무리된 AI5 칩을 우선 대만에서 생산한 후 나중에 애리조나에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AI5 초기 물량을 제외한 모든 차세대 AI 칩을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겠다는 뜻이다.
업계에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 기조에 주파수를 맞춰 공급망 조정에 나섰고, 미국 내 대규모 캐파(CAPA·생산 능력)를 갖춘 파운드리를 짓고 있는 삼성전자가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아직 반도체 품목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지만 다음 달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7일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반도체 관세에 대해 “2주 후에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