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를 댈 여지조차없는 완벽한 참패였다. 야심차게 내걸었던 ‘4강’ 목표는 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도 같았다. 기량은 부족했고 준비조차 어설펐으니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호주-체코전에서 호주가 체코를 8-3로 꺾었다.
이로써 호주가 3승1패로 일본(4승)에 이은 B조 2위를 확정지었다. 현재 1승2패인 한국은 이날 오후 7시 열리는 중국전 결과와 관계없이 탈락이 확정됐다.
2009년 이후 14년만의 4강 진출을 노렸던 한국은 2013, 2017년에 이어 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아들이게 됐다.
◇기량도, 정신력도 낙제점…재도약 아닌 더 큰 위기 직면
6년 만에 재개된 WBC는 한국야구의 ‘재도약’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2015 프리미어12 우승 이후 주요 국제대회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며 ‘위기’에 몰린 한국이 다시 저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하는 시선이 많았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류현진(토론토)과 최지만(피츠버그)의 합류가 불발됐지만 김하성(샌디에이고)과 함께 최초의 ‘비한국인’ 국가대표 토미 현수 에드먼(세인트루이스)이 ‘빅리그 키스톤콤비’를 이루고 김광현(SSG)과 양현종(KIA), 양의지(두산), 이정후(키움), 박건우(NC) 등 국내에서 몸값과 기량이 최고인 선수들이 모두 모였다.
대표팀 구성부터 난항을 빚었던 2013, 2017년과는 달랐다. 조 편성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팀들과 묶였기에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 ‘복병’이 있었던 당시보다 수월해보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마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세미프로’ 수준으로 여겨지던 호주에게 졸전 끝에 7-8로 패한 것이 시작이었다. 대표팀 소집 단계부터 줄곧 ‘가장 중요한 경기’로 여기며 총력전을 공언한 끝에 나온 결과였기에 ‘방심했다’는 핑계도 댈 수 없었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WBC B조 1라운드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대표팀 강백호가 7회말 1사 2루타를 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호주 측에서 강백호가 세리머니 중 베이스에 발이 떨어졌다고 어필 후 비디오 판독 끝에 아웃으로 정정됐다. 2023.3.9/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
그래도 이때까지는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최강 전력이자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을 잡는다면 비난을 단숨에 찬사로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라이벌’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보인 끝에 4-13으로 대패했다. 1점만 더 내줬다면 콜드게임이 나올 수도 있었던 참혹한 패배였다.
2연패 후 맞닥뜨린 체코와의 3차전은 이겼지만 유쾌하진 않았다. 실낱같은 희망을 살리기 위해선 최다득점, 최소실점이 필요했지만 경기 후반 어설픈 플레이들이 겹치며 3실점했다. 체코는 본업이 야구선수인 이들을 손에 꼽을 정도로 사실상 ‘아마추어’에 가까운 팀이다.
3경기에서 투수들이 내준 실점은 24점, 경기당 평균 8실점이다. 베테랑과 영건을 가릴 것 없이 누구 하나 믿을 만한 투수가 없었고 위기 상황에서 ‘볼질’을 일삼았다. ‘공인구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핑계는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 하다. 그것이 국제경쟁력이고 현재의 수준일 뿐이다.
타자들 역시 할 말이 없다. 조금이라도 낯선 투수만 만나면 침묵하기 일쑤였고 찬스에서의 집중력도, 한 베이스를 더 가려는 투지도 아무 것도 없었다. 경기 중 집중력을 잃는 어이없는 주루사나 견제사를 당하기도 했다.
야구대표팀 양의지와 박세웅. /뉴스1 DB © News1 김진환 기자 |
◇대회 직전 5개 도시 강행군…이틀 머물 한국엔 왜 들어왔나
대회 전 준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은 대회 직전 약 열흘 동안 무려 5개 도시를 오가는 강행군을 펼쳤다.
2월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한 대표팀은 같은달 28일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3월1일 한국에 들어왔고, 사흘 후인 4일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이후 평가전 등을 치른 뒤 7일 밤 대회가 열리는 도쿄로 이동했다.
엄청난 이동거리에 베테랑 선수들조차 힘겨워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더구나 전지훈련을 마친 뒤 투손에서 LA로 이동하는 과정에선 기체결함이라는 예상못한 악재까지 겹치면서 850㎞를 버스로 이동하기도 했다.
애초 대회 개최 장소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캠프를 차린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강철 감독의 소속팀 KT 위즈의 캠프가 차리는 곳 근방에서 훈련하겠다는 판단이 강행군의 시작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투손은 예년과 달리 추운 날씨를 보이면서 한국의 한겨울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연습경기가 취소되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투수들이 제대로 컨디션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캠프를 마친 뒤 한국에 들어와 이틀을 머문 뒤 다시 나간 일정도 의문이다. 곧장 일본으로 이동해 컨디션 조절에 박차를 기했어야 할 시점이었지만 이동시간만 더 늘린 꼴이었다.
한국의 1차전 상대였던 호주는 한국보다 열흘 전에 일본으로 이동해 현지 적응 훈련에 나섰고, 홈팀 일본이 일찌감치 미야자키에 캠프를 차린 것과 대조적이었다.
애초 부족했던 기량에 컨디션 조절을 못해 평소의 기량 조차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으니,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