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일주일 뒤인 유엔총회 무대가 아닌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간 관세 협상과 비자 제도 개선 논의 등 시급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정상 간의 ‘담판’이 성사될 기회가 다음 달로 미뤄진 셈인데, 한편으로는 협상이 핵심 쟁점의 이견으로 교착된 상황에서 한국이 오히려 시간을 벌었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나온다.
18일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이날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23일(현지시간)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를 계기로 한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 짓지 못했다.
당초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날 기조연설에 나선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두 정상이 지난달 25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정식 회담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정이 빡빡하고, 이 대통령 역시 집권 후 첫 유엔 행보라는 점에서 미국 외에 다른 국가들과의 다자외교 일정을 촘촘하게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부는 유엔총회 기간(9월 23일~29일) 중 언제라도 정상 간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정식 회담은 아니더라도 만찬장에서의 만남 등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달리 한미 모두 10월 말 경주 APEC을 계기로 한 한미 정상회담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전날인 17일 조셉 윤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린 ‘한미동맹 콘퍼런스’에 참석해 “지난달 한미 양국 대통령이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경주 APEC에서도 만나실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역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참석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방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한미 양국이 유엔총회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선 양국 간 관세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보다 빨리 열리지 못하는 건 중요한 기회를 놓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또 비자 제도 개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빠른 협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가 공개한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직원 300여 명을 기습 단속·구금하는 모습. (ICE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 2025.9.6/뉴스1
반면, 당장 다음 주인 유엔총회에서 관세 및 비자와 관련된 복잡한 사안들을 모두 정리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시간이 빠듯한 만큼, APEC 전까지 실무급 논의를 좀 더 진행한 뒤 보다 완성도 있는 타결을 이루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7월 말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는 대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데 큰 틀에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한 달 반 가까이 실무 협상을 진행했음에도 대미 투자협력 펀드 운용 방식 등 핵심 쟁점에서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제안한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현금 출자 방식으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우리 정부는 현실적인 재정 여건을 이유로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양측은 비자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공식 협의체인 ‘워킹그룹’ 출범에도 합의했지만, 위킹그룹의 구체적인 구성 방식과 주요 안건 등은 여전히 조율 중이다.
정재환 인하대학교 교수는 “한미가 현재 관세와 비자, 안보 문제 등 여러 분야의 사안들을 패키지로 다뤄야 하는 만큼, 정부가 협상안을 꼼꼼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