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파업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가 제너럴 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빅3 완성차 업체에서 사상 처음으로 동시 파업을 하는 데 이어 약 7만 5000명의 조합원이 있는 미국의 최대 병원 네트워크인 카이저 퍼머넌트 노조가 4일(현지시간)부터 파업에 들어간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 유행으로 의료 서비스가 긴요하고,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 부족 사태를 겪고 있어 이번 파업이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카이저 노조는 일단 3일간 한시 파업한다. 그렇지만, 파업이 시작되면 캘리포니아, 워싱턴, 콜로라도, 버지니아, 워싱턴 DC 등에 걸쳐 수십 개의 의료 시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CNN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이저는 파업에 대비해 비상 운영 계획을 짜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보건, 의료 분야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카이저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2021~2022년 ‘대퇴직’ (Great Resignation) 기간에 미국의 건강 관리 분야에서 500만 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퇴직했고, 이 분야 종사자의 3분의 2가량이 번아웃을 경험했으며 퇴직 비율이 5명 중 1명꼴에 달했다”고 밝혔다. 카이저는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카이저는 지난해 의사를 제외하고, 2만 9000명을 신규 채용했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의사를 제외한 직원이 22만 40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에만 다시 2만 2000명을 추가로 고용했고, 이 중 1만 명가량이 노조가 결성된 직종에 배치됐다고 밝혔다. 카이저는 현재 직원 봉급이 다른 경쟁 업체에 비해 20%가량 많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팬데믹을 거치면서 의료 보건 분야 파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1000명 이상이 참여한 파업 건수 42건 중에서 3분의 1가량을 보건 의료 분야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당시의 24%에 비해 증가한 것이다. CNN은 전체 민간 분야에서 의료 보건 분야 노조가 차지하는 비중이 9%에 불과하지만, 파업 비율이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카이저 노조는 팬데믹 사태 이후 안전하지 않은 근무 환경, 인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더 많은 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의료 분야 연구 기업인 ECRI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서 간호사가 100만 명 이상 부족하다. 또 현재 간호사의 평균 연령이 52세이고, 65세 이상 나이의 간호사가 전체의 20%가 넘는다.
UAW의 파업에는 조합원 7000명이 추가로 합류하면서 파업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숀 페인 UAW 회장은 지난달 29일 조합원 7000명이 추가로 파업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이번 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는 총 2만5000여명으로 늘었다. 이는 UAW 조합원의 약 17%에 달한다. UAW는 지난 15일부터 최초로 빅3 동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측은 향후 4년간 약 40%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은 약 20%의 인상률을 제시했다.
미국에서 노조 파업이 확산하는 가운데 미국인 절반 이상이 노조 활동을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일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지난 8월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응답자의 61%가 ‘노조 활동이 경제에 대체로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갤럽이 매년 진행한 같은 내용의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2009년 이래 지속해서 노조 지지 비율이 상승해 이번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응답자가 노조원이면 77%, 노조원이 아니면 47%가 노조에 긍정적인 의견을 표시했다.
최근 전미자동차노조(UAW)와 미국작가조합(WGA),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각각 벌인 파업에 대해서도 사측보다 노조를 지지한다는 의견이 훨씬 더 우세했다. 각 노조에 대한 지지 비율을 보면 UAW 75%, WGA 72%, SAG-AFTRA 67%였다.
개빈 뉴섬 미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전날 파업 중인 근로자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법안은 할리우드와 호텔 업계 파업으로 주목받았다. 뉴섬 주지사는 실업급여를 지급하기 위한 캘리포니아주의 기금이 연말까지 200억 달러(27조 1000억원) 규모의 채무를 안고 있어
이 법안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뉴섬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2주 이상 파업 중인 근로자에게 주당 450달러(약 61만 원)의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업급여는 자신의 잘못 없이 실직한 근로자가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