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를 대표하는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Krasznahorkai László)가 2025년 노벨문학상을 품에 안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각) 선정 이유에 대해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금 증명해 내는 강렬하고도 비전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라고 밝혔다.
한림원은 “그의 작품은 중유럽의 서사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인간 조건의 부조리함과 혼란을 길고 쉼 없는 문장으로 엮어내 세계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로 이어지는 중유럽 문학 전통 속 위대한 서사 작가이며 부조리와 기괴한 과잉 표현이 특징”이라며 “그는 여러 재능이 있으며, 동양에서 영감을 받아 더욱 사색적이고 섬세하게 다듬어진 문체를 구사한다”고 덧붙였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말의 거장’이라고 불린다. 그의 작품은 독일과 헝가리에서 잘 알려져 있으며, 특히 그는 헝가리에서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단에서는 그의 작품이 문장이 매우 길고, 단락 구분이 거의 없어 읽기 어렵고, 도전적이라 ‘강박적인 작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도 자신의 문체에 대해 “광기에 이를 때까지 현실을 해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헝가리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2년 케르테스 임레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라슬로의 노벨상 수상은 동유럽 문학의 위상을 재확인하며, 노벨상이 지향하는 시대정신과 미학적 깊이를 동시에 충족시켰다는 평가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54년 헝가리 남동부 소도시 줄러에서 태어났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1987년 독일로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85년 첫 소설 ‘사탄탱고’로 헝가리 문단에 강렬한 충격을 안겼다. 이 작품은 공산주의 붕괴 직전, 버려진 집단 농장 주민들의 궁핍한 삶과 사기꾼 이리미아시를 향한 헛된 기다림과 배신을 그렸다. 이 소설은 작가의 문학적 돌파구가 됐다. 또한 벨라 타르 감독과의 영화 각본 협업으로 자신만의 독특하고 암울한 세계관을 영상으로 확장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초기작들은 헝가리 시골을 배경으로 폭력, 무정부 상태, 구원에 대한 헛된 희망을 다루는 ‘종말론적 서사’라는 일관된 평을 받았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마침표 없는 길고 쉼 없는 문장’이라는 크러스너호르커이 특유의 문체다.
그의 서사는 고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됐다. ‘전쟁과 전쟁’은 기록 보관원 코린이 뉴욕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은 도스토옙스키의 ‘백치’를 닮은 남작의 귀향을 통해 기괴함 속의 블랙 코미디를 선보였다. 최근작 ‘헤르슈트 07769’는 독일의 소읍을 배경으로 바흐의 유산과 폭력, 아름다움이 결합된 비극을 그렸다.
특히 그의 문학 세계가 동양으로 확장된 점은 노벨상 수상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주목받는다. 중국과 일본 여행에서 받은 인상에서 영감을 받은 ‘세이오보가 거기에 있었다’는 그의 문학적 성숙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피보나치 수열로 구성된 독특한 이야기 모음집으로, 맹목과 무상함의 세계에서 예술 창조와 아름다움의 역할을 동양적 성찰과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목으로 불리며 작품 세계는 종종 고골이나 멜빌과 비교되곤 한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수전 손택(1933-2004)은 그의 ‘저항의 멜랑콜리’를 읽은 뒤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이라고 평가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앤더스 올슨 노벨문학상 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까지 이어지는 중부유럽 서사 전통의 위대한 작가이며, 작품 세계는 부조리와 그로테스크한 과잉으로 특징지어진다”며 “하지만 동양적 요소를 받아들여 더 사색적이고 세밀하게 조율된 어조를 작품에 반영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주요 작품으로는 ‘사탄탱고'(1985),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1999), ‘저 아래 서왕모'(2008), ‘마지막 늑대'(2009) 등이 있다.
다수의 문학상도 휩쓸었다.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코슈트상을 비롯해 스위스의 슈피허 문학상,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15년에는 헝가리 최초로 맨부커상 국제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사탄탱고’를 비롯해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등 6권의 작품이 번역 출간됐다.

◇ 출생 및 주요 작품
▲1954년 1월 5일 헝가리 출생
▲1983년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 전공
▲1985년 데뷔 장편소설 ‘사탄탱고'(S tántangó) 출간
▲1985년 단편소설 ‘은혜로운 관계: 죽음의 단편들'(Kegyelmi viszonyok : halálnovellák) 출간
▲1987년 요제프 아틸라 상 수상
▲1989년 장편소설 ‘저항의 멜랑콜리'(Az ellenállás melankóliája) 출간
▲1992년 장편소설 ‘우르가의 죄수'(Az urgai fogoly) 출간
▲1998년 단편집 ‘이사야가 왔다'(Megjött Ézsaiás) 출간
▲1999년 장편소설 ‘전쟁과 전쟁'(Háború és háború) 출간
▲2003년 장편소설 ‘북쪽에서 언덕, 남쪽에서 호수, 서쪽에서 도로, 동쪽에서 강'(Északról hegy, D lről tó, Nyugatról utak, Keletről folyó) 출간
▲2004년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코슈트 상'(Kossuth Prize) 수상
▲2004년 장편소설 ‘천국 아래 파괴와 슬픔'(Rombolás s bánat az Ég alatt) 출간
▲2008년 장편소설 ‘서왕모의 강림'(Seiobo járt odalent) 출간
▲2009년 단편·산문집 ‘마지막 늑대'(Az utolsó farkas) 출간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 맨부커 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수상
▲2016년 장편소설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B ró Wenckheim hazatér) 출간
▲2018년 장편소설 ‘맨해튼 프로젝트'(A Manhattan-terv) 출간
▲2018 장편소설 ‘궁전을 위한 기초작업'(Aprómunka egy palotáért) 출간
▲2019 장편소설 ‘언제나 호메로스'(Mindig Homéroszna) 출간
▲2024년 장편소설 ‘헤르슈트 07769 : 플로리안 헤르슈트의 바흐 소설 : 이야기'(Herscht 07769 : Florian Herscht Bach-regénye : elbeszélés) 출간
▲2024년 소설 ‘젬레가 사라지다'(Zsömle odavan) 출간
▲2025년 노벨문학상
◇ 영화 각본(Film)
▲1988년 ‘파멸'(Damnation (Kárhozat) 벨라 타르 감독; 공동 각본
▲1990년 ‘마지막 배 도시 생활'(Az utolsó hajó) 벨라 타르 감독; 공동 각본
▲1994년 ‘사탄탱고'(S tántangó) 벨라 타르 감독; 공동 각본 (소설 ‘사탄탱고’ 원작)
▲2000년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 벨라'(Werckmeister harmóniák) 타르 감독; 공동 각본 (소설 ‘저항의 멜랑콜리’ 원작)
▲2007년 ‘런던에서 온 사나이'(A Londoni férfi) 벨라 타르 감독; 공동 각본 (조르주 심농 소설 원작)
▲2011년 ‘토리노의 말'(A Torinói ló) 벨라 타르 감독; 공동 각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