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국 현지 생산체계를 완성차에서 철강까지 넓히며 북미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완성차 생산 확대에 이어 핵심 소재인 자동차강판까지 현지에서 조달하는 구조를 구축해 고율 관세와 물류비 부담을 낮추고, 미국 내 생산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제철은 4일(현지시간) 미국 루이지애나주 도널슨빌에서 HPLS(HYUNDAI-POSCO Louisiana Steel) 전기로 제철소 기공식을 열었다. 총 58억달러(약 8조원)가 투입되는 HPLS는 연산 270만톤 규모로 2029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이 가운데 자동차용 강판은 180만톤이다. 지분은 현대제철 50%, 포스코 20%,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15%를 보유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 회장이 지난해 3월 미국 백악관에서 발표한 대미 투자 계획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현대차그룹은 조지아 메타플랜트와 앨라배마·조지아 완성차 공장 등 북미 생산거점을 확대한 데 이어 자동차강판 생산까지 현지화하면서 공급망을 한층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차량을 미국에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소재 조달까지 묶어 관세와 물류, 납기 변수를 함께 줄이는 전략이다.
정 회장은 기공식에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현대차그룹은 물론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차세대 모빌리티를 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HPLS를 그룹 내부 수요만을 위한 제철소가 아니라 미국 완성차와 산업 전반으로 고객을 넓히는 생산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 시장은 현지 생산의 경제성도 높다. 지난해 미국 조강 생산량은 8190만톤이었지만 매년 2000만톤 이상의 철강을 수입하고 있다. 열연·냉연도금강판 등 고부가 판재류 수입만 1000만톤을 넘는다. 최근 미국 열연강판 가격은 톤당 약 1200달러로 아시아·유럽보다 30% 이상 높고, 지난해 자동차 생산도 1024만대로 세계 2위 규모다.
특히 루이지애나는 철도와 미시시피강 수운망을 활용할 수 있고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 HMGMA와도 연결돼 공급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소재부터 완성차까지 미국 남부에 생산축을 묶는 효과가 커지는 셈이다. 현지 조달망의 안정성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통상 장벽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미국은 지난해 외국산 철강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렸고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254만톤으로 전년보다 약 8% 줄었다. HPLS가 가동되면 현대차와 기아는 자동차강판 현지 조달을 늘려 관세와 운송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을 넘어 GM·폭스바겐·혼다 등 현지 완성차업체까지 고객 기반을 넓힐 여지도 생긴다.
포스코가 20% 지분으로 참여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현대차그룹 내부만으로 공급망을 묶기보다 국내 철강기업과 함께 미국 시장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구조다. 미국에서 확보한 고객과 브랜드 인지도가 국내 생산 고부가 철강재의 추가 수출로 이어질 경우 현지 투자와 국내 생산거점 간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HPLS는 미국 최초의 전기로 기반 자동차강판 전문 제철소다. 직접환원철과 철스크랩을 전기로에 투입해 탄소배출을 줄이고, 향후 직접환원설비에 쓰는 천연가스를 수소로 대체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 회장의 북미 전략이 완성차 생산 확대를 넘어 소재 조달과 친환경 생산체계까지 아우르는 현지화로 확장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