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군이 1일 사전 예고 없이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 B-1B ‘랜서’ 등을 동원한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국방장관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 위협에 따른 ‘확장억제’ 강화 기조를 재확인한 뒤 곧바로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확장억제’란 미국이 적대국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능력과 재래식전력, 미사일방어능력 등 억제력을 미 본토 방위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제공한다는 개념을 말한다.
2일 우리 국방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서해 상공에선 우리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와 미군 B-1B 폭격기, 그리고 F-22·35B 스텔스 전투기가 참가한 올해 첫 한미연합 공중훈련이 진행됐다. 미군의 전략폭격기와 스텔스 전투기는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될 주요 전략자산이다.
우리 국방부는 “이번 연합공중훈련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강력하고 신뢰성 있는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미국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한미 공군의 연합작전수행 능력과 상호 운용성을 증진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한미 양국 정부는 작년 정상회담과 제54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적시적이고 조율된 전략자산 전개’에 합의했다. 즉, ‘행동하는 동맹’으로서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국가와 국민안전을 보장하고자 하는 굳건한 결의가 이번 연합훈련에 반영돼 있다는 게 군 당국의 평가다.
특히 이번 훈련을 위한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2023년 새해 들어 북한이 별다른 군사적 행동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기존과 차이가 있다.
한미 양국 군이 1일 서해 상공에서 연합공중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훈련엔 우리 군 F-35A 전투기와 미군 B-1B 전략폭격기 및 F-22·35B 전투기가 참여했다. (국방부 제공) 2023.2.2/뉴스1 |
미군은 북한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2018년 이후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사실상 중단했다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고 핵실험장 재건에 나선 작년부터 전락자산을 재전개했다. 그러나 폭격기 등 공중 전략자산 전개는 주로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일각에선 미군 B-1B 폭격기의 이번 한반도 전개와 연합훈련이 최근 국내에서 북핵 위협에 따라 ‘자체 핵무장론’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 대사는 1일 한국여기자협회 주최 ‘2023 포럼W’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및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 등에 대해 “한국인들 사이에 불안감이 있다는 걸 안다”며 “한미가 확장억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굳은 의지는 엄중하고 철통같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국 정부와 국민을 좀 더 안심시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미국은 믿을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오스틴 장관도 지난달 31일 한미국방장관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F-22·35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늘리겠단 의사를 밝혔다.
한미 당국은 미군 전략자산 운용을 비롯한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가 북한의 군사행동을 사전에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반발한 북한이 더 수위가 높은 군사행동을 실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단 지적도 나온다.
실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일 발표한 담화에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확대 방침과 관련, “미국의 그 어떤 군사적 기도에도 ‘핵엔 핵으로, 정면대결엔 정면대결로’란 원칙에 따라 초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양국 군이 1일 서해 상공에서 연합공중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훈련엔 우리 군 F-35A 전투기와 미군 B-1B 전략폭격기 및 F-22·35B 전투기가 참여했다. (국방부 제공) 2023.2.2/뉴스1 |
북한은 올 1월1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에 해당하는 ‘초대형 방사포'(KN-25) 1발을 발사한 이후 아직 추가 도발엔 나서지 않은 상태다. 다만 북한 평양 시내에선 오는 8일 ‘건군절’ 제75주년을 앞두고 대규모 열병식을 준비 중인 정황이 지속 포착되고 있다.
또 오는 16일은 북한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광명성절)이란 점에서 이를 계기로 모종의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 당국은 이외에도 북한이 ‘올 4월까지 군사정찰위성 발사 준비를 마치겠다’고 예고했단 점에서 신형 고체연료 로켓엔진을 적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ICBM을 쏘기 전 단거리·중거리 등 다른 사거리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곤 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첫 한미연합 공중훈련이 동해가 아닌 ‘서해 상공’에서 이뤄진 사실을 주목하는 기류도 있다. 북한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중국에서도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단 점에서다.
그간 한미 양국은 중국 측에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설득·압박하는 이른바 ‘건설적 역할’을 요구해왔으나, 중국 측은 미국과의 패권경쟁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을 사실상 묵인해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미국방장관은 지난달 회담 뒤 공동발표문에서 중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으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공동인식” 등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표현을 담았다.
우리 국방부는 “앞으로도 한미 양국은 미 전략자산 전개와 연계한 연합훈련을 강화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단호히 대응하기 위한 능력과 태세를 더욱 굳건히 갖춰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