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 엔지니어들이 SK하이닉스와 해외 반도체 회사로 옮기는 일이 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군대식 위계 문화와 성과급 축소, 늘어난 업무 부담이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고 지난 17일(현지시각) 샘모바일과 레스트 오브 월드(Rest of World) 등이 보도했다.
한 칩 설계 엔지니어는 레스트 오브 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동료가 여러 차례 밤새워 일하다가 사무실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봤다”며 “이대로라면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한 사람이 칩 설계의 한 부분만 맡았지만, 지금은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현직 삼성전자 엔지니어 10명은 “근무 시간이 길어지고, 보너스가 줄었으며, 일거리가 늘어나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인텔, 중국 CXMT· YMTC 등 다른 회사로 옮긴 사람이 많다”고 밝혔다. 한 공정 엔지니어는 “이제는 SK하이닉스에 공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당연해졌다”며 “삼성이 뒤처지는 까닭은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이 모두 떠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한 관리자는 “빨리 여기서 나가라”며 이직을 권유한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 “수치 부풀리기 압박” 논란…삼성 “성과 중심 보상, 소통 강화”
엔지니어들은 “관리자들이 이룰 수 없는 목표를 내세우고, 엔지니어들에게는 그 목표를 맞추기 위해 수치를 조작하거나 왜곡하라는 압박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엔지니어와 관리자는 실제로 수율을 부풀리고 결함을 적게 보고한 일이 있다고 밝혔다. 한 직원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대로 해결책을 찾기보다 군대식으로 덮어버린다. 이런 것을 삼성 방식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오랫동안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으로 알려졌으나, 2023년 매출이 크게 줄면서 지난해 지급한 직원 보너스가 전년보다 72% 줄었다. 사업부의 돈벌이가 나아지지 않아 당분간 상황이 바뀌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삼성전자 대변인은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다”며 “명확한 성과 중심 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공정성과 투명성, 유연성을 바탕으로 직원과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 업계 “삼성, 조직문화 바꿔야 인재 잡는다”는 목소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에서 엔지니어 이탈이 빨라지는 까닭은 군대식 조직문화와 보상 체계에 대한 불만이 겹쳤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조직문화를 바꿀지 여부가 앞으로 인재 확보와 기술 경쟁력 유지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