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여성용 속옷에 붙는 관세가 남성용보다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동일한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여성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이른바 ‘핑크택스’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값비싼 원단에 더 낮은 관세가 부과되는 모순도 드러났다.
13일(현지시간) 미국 언론 ‘악시오스’는 미 싱크탱크인 진보정책연구소(PPI)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 내 수입 여성 속옷의 관세율은 평균 15%인데 반해 남성 속옷은 11.5%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속옷 1개당 평균 1.1달러를, 남성은 75센트를 세금으로 지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속옷의 98%는 수입품이다. 사실상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비싼 가격에 속옷을 구매하는 셈이다.
여성이 구매하는 속옷 양은 남성보다 월등히 많다. 이에 따라 지난해 미국이 속옷 관세로 거둬들인 15억4000만달러(약 1조9500억원) 중 4분의 3은 여성 속옷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에 참여한 에드 그레서는 “다른 국가에선 속옷에 성차별적인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같은 품목에 동일한 세율을 적용한다”며 “유독 미국에서만 여성에게 세금을 중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CNN은 호주에 붙는 속옷 관세는 남녀 모두 동일하게 5%며, 뉴질랜드는 10%, 캐나다는 18% 등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브래지어와 코르셋에 6.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반면 다른 속옷에 대해선 9%의 관세를 부과해 여성용 속옷에 더 낮은 세율을 매겼다.
그레서는 성별에 따른 세율 차이가 발생한 원인으로 미국 의류업계가 과세 당국에 로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는 “여성 의류는 레이스와 프릴 등의 장식이 있어 남성 의류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류 산업에서 미 제조업자들은 노동집약적인 여성 제품 생산 시 외국 업체와의 경쟁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미 의류업체가 가격 경쟁력 제고를 위해 보호무역 차원에서 여성 의류에 고율 관세를 매기도록 했다는 분석이다.
속옷에서 시작한 핑크택스 논쟁은 다른 품목으로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칼럼니스트 캐서린 램팰은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핑크택스는 면도기, 데오드란트, 바디워시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속옷 관세는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불평등한 것으로 드러났다. 값비싼 고급 원단일수록 오히려 더 낮은 관세가 부과되면서다.
실크 원단에는 가장 낮은 세율(여성2.1%·남성0.9%)이 붙지만 중산층이 많이 찾는 면은 더 높은 세율(7.6%·7.4%)이 붙는다. 특히 서민들이 즐겨 입는 폴리에스테르 섬유에는 가장 무거운 관세(16%·14.9%)가 부과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램팰은 “보호무역에 따라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미 관세 제도는 계급과 성별에 대한 편견으로 점철됐다”며 “여러 면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퇴행적”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