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3일(이하 현지시각)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를 모두 탈환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대패를 안겼다.
특히 텍사스, 캔자스, 아이오와 등 공화당의 전통적 우세 지역에서도 민주당 후보들이 승리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 상당한 제약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선거에서는 고물가와 생활비 부담, 관세정책, 이란 전쟁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공화당의 패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인 지원 유세에 나서고 공화당과 주요 후원자들이 막대한 선거자금을 투입했지만 민주당의 승리를 막지는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민주당이 공화당 우세 지역까지 휩쓸며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고 미국 정치가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분점 정부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고 4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개표 결과를 중계 중인 AP통신도 민주당이 상·하원 과반을 확보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지난 2년간 이어진 공화당의 백악관과 의회 동시 장악 구도가 막을 내리게 됐다.
◇ 텍사스 38년 만에 민주당 상원의원…캔자스도 94년 만에 승리
민주당의 승리는 공화당이 오랫동안 강세를 보여온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텍사스주에서는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은 공화당 켄 팩스턴 후보를 꺾었다.
텍사스에서 민주당 후보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승리한 것은 1988년 이후 38년 만이다.
캔자스주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1932년 이후 94년 만에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FT는 “높은 연료비와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에 불만을 가진 농민과 목장주들의 반발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아이오와 등에서도 공화당이 차지했던 상원 의석을 확보했다.
미시간주에서는 민주당 진보 성향 후보인 압둘 엘사예드가 승리해 미국 역사상 첫 무슬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엘사예드는 공화당의 대규모 선거자금 투입과 민주당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뒀다.
하원에서도 민주당은 펜실베이니아 리하이밸리에서 아이오와, 미시간, 오하이오에 이르는 여러 경합지역에서 공화당 현역 의원들을 꺾었다.
공화당이 자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재조정했던 플로리다에서도 민주당은 일부 위태로운 하원 의석을 지켜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젊은층과 히스패닉,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대하며 구축했던 승리 연합이 이번 선거에서는 상당 부분 무너진 것으로 분석했다.
◇ 트럼프 “내 패배 아니다”…민주당 입법엔 거부권 행사 예고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의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패배로 받아들이는 데는 선을 그었다.
그는 선거 결과의 윤곽이 드러난 뒤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잘 싸웠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나는 투표용지에 없었다”며 이번 결과를 자신의 패배로 간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롭게 구성될 민주당 의회가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강경한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민주당이 제안하는 터무니없는 법안은 차단하겠다면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강조했다.
다만 민주당과 국정 현안을 해결할 방법을 찾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번 선거 결과로 민주당은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입법을 저지하고 행정부와 대통령 가족에 대한 조사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하원 민주당을 이끄는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선거 결과가 미국 전체를 위한 승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이 국가의 부패 문제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새 의회가 출범하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하원의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고물가·관세·이란 전쟁에 민심 이탈…공화당 선거자금도 역부족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이끈 주요 요인으로는 경제 상황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꼽힌다.
FT는 급등한 생활비와 관세정책,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에 따른 부담 등이 유권자들의 불만을 키웠다고 분석했다.
선거 당일 발표된 미국 정부 자료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평균 휘발유 가격이 역대 행정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올랐다는 결과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상대국에 대한 관세정책과 중동 지역 군사충돌, 강경한 이민정책 등도 선거 과정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를 앞둔 6주 동안 전국을 돌며 공화당 후보들을 적극 지원했지만 주요 경합지역에서 연달아 패배했다.
대규모 선거자금도 공화당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F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을 지원하는 정치활동위원회인 마가(MAGA Inc.)는 텍사스부터 미시간에 이르는 주요 선거에 3억8000만달러(약 5096억원)를 투입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텍사스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팩스턴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2억달러(약 2682억원) 이상을 지출했다.
그러나 팩스턴 후보는 민주당 탈라리코 후보에게 패배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한 공화당 달린 그레이엄 후보가 민주당 애니 앤드루스 후보에게 패했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공화당 출신 톰 라이스 전 하원의원은 “민주당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텍사스 주지사도 민주당 승리…AI 데이터센터 규제 변수
민주당은 연방 의회뿐 아니라 주지사 선거에서도 주요 승리를 거뒀다.
텍사스주에서는 민주당 지나 이노호사 후보가 공화당 그레그 애벗 주지사를 꺾었다.
FT는 “애벗 주지사가 실리콘밸리와 기업계의 지지를 받아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패배가 중요한 정치적 변화”라고 전했다.
조지아주에서는 민주당 키샤 랜스 보텀스 후보가 승리해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주지사로 당선됐다.
주지사 선거 결과는 AI 데이터센터 건설과 관련된 규제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전력 사용과 지역사회 부담을 놓고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FT는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이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AI 인프라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시장은 민주당의 압승에 따른 정책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 주가지수 선물은 민주당의 승리가 AI 투자 확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처음에는 하락했지만 이후 반등했다.
FT는 일부 투자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결과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점에 안도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상·하원 장악으로 미국은 내년 1월부터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 다른 정당에 의해 운영되는 분점 정부 체제로 전환한다.
FT는 이번 선거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과 이란 전쟁, 이민정책 등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드러낸 결과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