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소재 실리콘밸리은행(SVB)은 이틀 전만 해도 일부 자본 확충이 필요했지만 비교적 건전했다.
하지만 SVB의 주요 고객인 벤처자본가들이 돈을 날릴 수 있다는 걱정에 휩싸이며 대량 예금인출이 시작됐고 40년 된 은행은 불과 14시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은행 전반에 도산이 전염될 수 있다는 공포심이 삽시간에 퍼지는 순간이었다.
◇SVB 파산…美 역사상 두번째 큰 은행 도산
SVB이 뱅크런(대량예금 인출사태)에 휩싸이고 자본확충에 실패하면서 결국 미 규제당국이 수습에 나섰다. 규제 당국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0일(현지시간) SVB를 폐쇄하고 2090억달러(약28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압류했다.
CNBC방송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로 워싱턴뮤츄얼이 무너진 이후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18개월 전만 해도 SVB 기업가치는 440억달러(약58조원)가 넘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FDIC는 예금보호를 받는 25만달러(약3억3000만원)에 대해서는 다음주 월요일인 13일 인출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SVB의 대부분 고객들은 벤처캐피털펀드, 기술 및 헬스케어 스타트업(새싹기업)으로 잔고가 예금보호액을 대부분 훌쩍 넘는다. FDIC는 예금자들이 다음주 1차 대금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는 SVB 자산 현황에 달렸다고 전했다.
규제당국은 파산한 은행을 더 크고 안정적 금융기관과 합병하는 경향이 있어 예금자들이 얼마나 예금보호액 이상의 돈을 얼마나 돌려 받을지는 미지수다. 일례로 워싱턴뮤추얼은 JP모간체이스에 매각됐다.
또 이날 SVB 채권 가격은 선순위의 경우 액면가 1달러당 45센트, 후순위의 경우 액면가 1달러당 12.5센트로 대폭락했다. 채권자들의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해보인다.
◇금리압박->뱅크런->주가폭락
SVB 파산은 연준이 40년 만에 최고로 오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내놓은 공격적 금리인상의 여파라고 CNBC방송은 설명했다. SVB 붕괴는 금리인상으로 촉발된 불안과 혼란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SVB 주요 고객은 스타트업이다. 최근 금리인상으로 인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꽁꽁 얼어 붙었고 개인적 자금 조달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스타트업들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SVB에 묶어둔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이 은행의 자본 부족이 드러났다. SVB는 8일 오후 18억달러 손실을 보고 매도 가능한 보유채권을 팔아 치워야만 했다.
그래도 모자란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주식 매각을 발표했다. 9일 SVB 주식은 거래 중단 이전 60% 대폭락하며 급기야 SVB는 주식 매각 대신 회사 자체를 팔겠다며 매수자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소식은 더 많은 예금 인출사태를 불러 오고 주가 폭락을 부추기며 결국 규제 당국이 나설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CNBC방송은 이번 SVB 사태의 여파에 스타트업들은 지급불능에 빠지고 벤처 투자자들은 자금조달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금리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기술업계는 더 깊은 불안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우려는 뉴욕 금융시장은 물론 미국 경제까지 전염시킬 수 있다고 공포심에 이날 뉴욕 증시의 기술주 중심 나스닥은 2% 가까이 급락했다.
수십억 달러의 벤처캐피털펀드의 한 고위 임원은 FT에 “SVB가 실리콘밸리를 지원하며 기업들과 관계를 맺어온 40년 역사가 14시간 만에 증발했다”고 말했다.
◇전염 차단 자신…”은행 시스템 10년 전과 다르다”
하지만 미 정부는 SVB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부실을 상징하지 않는다며 수습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재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재닛 옐런 장관이 은행들을 관할하는 연준, FDIC, 저축기관감독청 고위 관리들과 만나 SVB 사태를 긴급 논의했다고 밝혔다.
재무부 성명은 “은행 규제기관들은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옐런 장관이 전적인 자심감을 표명했다”며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탄성적 회복력이 강하고 규제기관들은 이런 종류의 이벤트를 해결할 효과적인 수단이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의 세실리아 루즈 위원장 역시 “우리 은행 시스템은 10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예금자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지 않는한 SVB 붕괴는 금융시스템을 위협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채권펀드 핌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모하메드 엘-에리언 그래머시펀드 회장은 트위터를 통해 “대차대조표를 신중하게 관리하고 더 많은 정책 실수를 피함으로써 전염 위험과 시스템 위협은 쉽게 억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