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째를 맞는 가운데, 산업·에너지·통상 정책 전반에서 ‘실용주의’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반면교사 삼아 현실과 이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주요 정책으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에너지 믹스’ 전략과 국익 중심의 통상 정책 기조 등이 꼽힌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장기적 목표는 유지하면서도 중단됐던 원전 산업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복원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 분야에서도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내세워 통상과 공급망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해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신임 산업부 장관 후보자로 김정관 두산에너빌리티 마케팅부문 사장을 깜짝 발탁했다. 현직 기업인의 장관 발탁은 역대 정권을 통틀어서도 전례가 많지 않은데다 원전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용한 실용정부가 되겠다”면서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 기조를 천명했다.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실용주의’ 기조를 인선 과정 등에서 확실히 보여줬다.
이 대통령은 환경부 장관 후보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하고, 대통령실 기후환경에너지비서관에는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장을 임명했다. 이후 김정관 후보자까지 지명하며 정부 핵심 에너지 정책 라인업에 국회, 산업계, 시민단체 출신 인사를 고루 포진시켰다. 이는 이념을 넘어 현실적 전환과 국민 체감 성과에 집중하겠다는 ‘실용주의’의 방침을 인사로 보여준 사례로 해석된다.
김성환 의원과 이유진 비서관은 재생에너지 확대 및 기후위기 대응에 주력해 온 인사들로, 에너지 전환의 제도 기반을 마련할 적임자라는 평가다. 3선 출신인 김 의원은 입법과 정책 추진 경험을 살려 구체적인 환경정책 이행에서 강점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 비서관 역시 시민사회와 환경 분야에서의 활동 이력을 바탕으로, 실무 중심의 정책 조율에 기여할 전망이다.
여기에 산업계 출신인 김정관 후보자는 기획재정부에서 정책기획관, 국채과장 등을 지낸 경제정책통으로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원전·수소·풍력 등 에너지 사업 전반에 관여해온 인물이다. 김 후보자가 몸담았던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 기자재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소·풍력·가스터빈·수처리 등 전 영역을 포괄하는 종합 에너지 기업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인선 흐름을 두고 정부가 특정 에너지원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실익 중심의 실용 노선을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이같은 정책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윤석열 정부의 원전 중심 기조에서 벗어나 현실 기반의 ‘에너지 믹스’ 전략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주근 리더스 인덱스 대표는 “(새 정부 인사를 보면) 교수 출신들이 역대 정권에 비해 가장 적다. 정통 관료 출신들과 기업인 출신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김 후보자의 이력은) 둘 다 하이브리드 되는 것”이라며 “디테일하고 실용적이고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이런 코드가 읽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통상 정책에서도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흐름이 감지된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시절에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본부장에게 다시 한번 통상 수장을 맡기며 실용 통상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여 본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통상과 산업, 에너지를 망라해 대미 협상 TF를 확대 개편하고 실무 수석대표도 국장급에서 1급으로 격상했다.
여 본부장은 지난 22일 관세 협의 방미길에 오르며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 상호호혜 협상 원칙을 분명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방미 기간 30여 건의 미팅을 소화한 여 본부장은 특파원 간담회에서도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통상 전략, 협상에 임하는 선의를 폭넓게 설명했다”며 “관세 뿐 아니라 인공지능,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조선, 원자력 등 제조업 전반에 걸친 상호호혜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미국 측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밝혔다. 통상 아웃리치에서도 실용주의 기조가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에너지·통상정책 전반에 깔려 있는 ‘실용주의’ 기조는 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6일 “외교에는 색깔이 없다.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국익이냐, 아니냐가 유일한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국익 중심 실용외교로 통상과 공급망 문제를 비롯한 국제 질서 변화에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산업, 에너지, 통상 전반에 깔린 실용주의 기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미중 전략경쟁, 탄소국경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국제경제 지형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는 실리 중심 전략으로도 읽힌다. 미국과의 관세 협의, 유럽과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협상, 남미·인도 등 신흥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전략 등 주요 국면에서도 이 정부의 실용주의 통상 기조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과 에너지, 통상이 개별 영역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만큼 융합과 실용을 중심에 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복합 위기 상황에서 실용 노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산업·에너지·통상 정책은 탈이념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접근이다. 정책 기조 뿐 아니라 인사, 외교 메시지, 실무 구조 등 전 영역에 실용이 녹아들고 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