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 여파로 촉발된 물가 상승 압력이 전쟁 종료 이후에도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며 미국 가계와 기업에 지속적인 부담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20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의 물가 흐름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좋은 경로에 있었지만 일부 반전이 나타났다”고 FT에 말했다. 그는 “미국의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같은 충격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전쟁이 내일 끝나더라도 그 여파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호르무즈 봉쇄 충격…유가 110달러까지 급등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 원유 공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핵심 수송로가 막히며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전쟁 초기 배럴당 약 70달러(약 10만3180원)에서 한때 110달러(약 16만2140원)를 넘어섰다. 이후 휴전 기대 속에 90달러(약 13만2660원) 아래로 하락했지만, 이란이 해협 통제 유지 방침을 밝히면서 불확실성은 여전히 큰 상황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은 즉각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미국 노동부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3.3%로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IMF는 올해 미국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3.2%로 상향 조정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전망치를 2.8%에서 4.2%로 올렸다.
◇ 휘발유·디젤 급등…물류·식품 가격 연쇄 상승
전쟁 초기 물가 상승은 주로 휘발유 가격 급등에서 비롯됐다. 미국 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2.98달러(약 4393원)에서 4.08달러(약 6014원)까지 상승했다.
특히 디젤 가격 상승은 더 큰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디젤 가격은 갤런당 3.76달러(약 5542원)에서 5.59달러(약 8238원)로 뛰며 물류·농업 등 전 산업 비용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실리 지역에 거주하는 은퇴자 래리 스미스는 “이 나라는 여전히 디젤로 돌아간다. 디젤 가격이 오르면 모든 것이 연쇄적으로 오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비용 상승은 항공·식품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항공유 가격은 두 배로 뛰며 항공권 가격 인상을 유도했고 질소 비료 가격은 30% 이상 상승해 향후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식료품 유통업체 스튜 레너즈의 스튜 레너즈 최고경영자(CEO)는 “연료 비용이 식품 사업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일·채소 운송 비용이 5000달러(약 737만원)에서 7000달러(약 1032만원)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 ‘끈적한 인플레’ 우려…저소득층 타격 확대
전문가들은 초기 에너지발 물가 상승이 시간이 지나면서 ‘2차 인플레이션’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들이 상승한 에너지 비용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는 “에너지 가격이 높은 상태가 지속될수록 기업들이 이를 가격에 반영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특히 저소득층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연료와 난방비 지출 비중이 높은 계층일수록 가격 상승의 부담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리 지역 주민들은 이미 소비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가구는 “생활비 상승으로 간식 같은 사치는 줄이고 필수품만 구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 트럼프 ‘물가와의 전쟁’ 시험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가 안정 공약을 내세워 집권했지만 이번 전쟁 여파로 정책 시험대에 올랐다. 물가 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올해 중간선거에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백악관은 에너지 시장 안정 시 물가도 점차 안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석유 기업들에 생산 확대를 요청하고 주유소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다만 전문가들은 물가 상승 압력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지프 개그논은 “물가는 점진적으로 내려가겠지만 연말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