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황금풍뎅이(gold bugs)의 나라가 됐다. 금매입에 대한 부가가치세가 없어지고 외국 화폐가 귀해지면서 금화와 금괴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현지시간) 인용한 세계금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금화와 금괴 수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었는데 전년비 거의 5배에 달했다.
영국과 러시아가 합작한 금생산업체 폴리메탈의 비탈리 네시스 최고경영자(CEO)는 FT에 “민간인들이 돈을 비축할 방법을 찾고 있다”며 “유로와 달러의 공급이 달리며 금의 인기가 급등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가 금매입을 적극 장려한 측면도 있다. 지난해 3월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화 매도를 억제하는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정부는 금괴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폐지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 장관은 달러가 “변동성이 크고 다양한 위험에 노출됐다”며 귀금속을 매력적인 투자 대안처로 적극 홍보했다. 그는 지난 3월 기자회견에서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금은 위대한 달러 대체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전세계 금수요는 18% 늘어나 10년 넘게 만에 최고에 달했다. 각국이 자산 다각화에 나서며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금을 매입했다. 금값은 지난 11월부터 1월까지 20% 가까이 올랐는데 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주로 사재기가 심했다고 나티시스의 버나드 다흐다흐 상품분석가는 FT에 말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이 달러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크게 노력한 결과”라고 밝혔다. 최근 러시아의 금정책 변화는 중국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시장을 개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다흐다흐 분석가는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금수요가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최대 금수요는 단연 중국으로 전체의 19%에 달한다. 이에 러시아 금광업체들은 새로운 바이어들을 찾기 위해 혈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금은 80%를 해외로 수출됐다. 특히 러시아가 중국으로 수출한 금은 1억5000만달러 늘어나 63% 급증했다.
소매 금투자를 위한 인프라(사회기반시설)는 여전히 부족하다. 예를 들면 개인들이 금괴를 팔려면 은행을 거쳐야만 한다. 금을 보관할 만한 장소도 자택 이외에는 없어 문제다. 금융컨설팅업체 스미르노바는 금괴에 흠집 하나만 나도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