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출시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톰스하드웨어(Tom’s Hardware)는 19일(현지시각) 엔비디아의 중저가형 라인업인 ‘지포스 RTX 50 슈퍼’ 시리즈가 고가의 차세대 그래픽 메모리(GDDR7) 단가 부담으로 인해 출시 일정 조정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월 열린 상공회의소 제주포럼 브리핑에서 현재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최태원 회장은 당일 브리핑을 통해 반도체 공급 확대를 통한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고 시장 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인공지능용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제조사들의 역량이 쏠리면서 범용 디램(DRAM) 생산능력은 상대적으로 축소됐다. 반도체 가격 상승이 개인용 컴퓨터(PC)와 스마트폰 등 완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전체 물가를 밀어올리는 ‘칩플레이션’ 우려도 심화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변동성과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7700억 원) 규모의 고도 패키징 시설 건설을 추진하며 현지 생산 거점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래픽 메모리 공급 병목…엔비디아 차세대 슈퍼 시리즈 지연 관측
엔비디아의 그래픽 카드 제조 파트너사들은 연산 칩을 확보하고도 완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용 차세대 메모리인 GDDR7 가격 폭등이 생산 차질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톰스하드웨어는 19일 이번 신형 GPU에 탑재될 예정인 3기가바이트(GB) 용량의 GDDR7 모듈 단가가 기존 2GB 제품과 비교해 최대 3배 수준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핵심 부품 단가가 급등하면서 엔비디아가 설정한 권장소비자가격(MSRP) 기준으로는 제조사들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격 부담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완제품 그래픽 카드의 소매가격이 크게 뛰거나 제조사들이 생산을 기피해 시장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병목 현상은 엔비디아가 2025년 말 공급 정책을 변경하면서 한층 심화했다.
엔비디아는 과거 연산 칩과 그래픽 메모리를 묶어 파트너사에 일괄 공급하던 방식을 폐지했다. 톰스하드웨어의 19일 분석을 보면 조립 제조사들은 극심한 공급 부족을 겪는 시장에서 각자 메모리를 조달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과거 전체 제조원가(BOM)의 10%에서 15% 수준에 머물던 메모리 비용은 최근 AI 데이터 센터용 메모리 수요 폭발로 인해 공급망 전반에서 제조원가의 약 25%까지 비중이 급격히 확대됐다.
최태원 회장 공급 확대 시사…법적 불확실성 속 美 투자 진행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7월 포럼 브리핑에서 메모리 가격 급등이 정보기술 생태계 전반에 미칠 위험성을 지적했다. 최태원 회장은 빅테크 기업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상승한 비용을 흡수할 수 있지만, PC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증가한 반도체 원가를 최종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최 회장은 소비자 시장의 가격 저항선을 고려할 때 원가 상승 부담을 제어하고 칩플레이션을 방지하려면 생산능력 확대를 통한 공급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메모리 단가의 고공행진이 장기화하면 기존 대형 3사 중심의 과점 체제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마진율이 높아지면서 대체 공급원을 찾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톰스하드웨어는 19일 보도에서 글로벌 하드웨어 시장이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중국산 범용 메모리 채택 확대를 타진하고 있으며 테크 기업들의 조달선 다변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거시적 수급 리스크 속에서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파앗 퍼듀대학교 인근에 38억 7000만 달러를 투입하는 반도체 패키징 공장 건설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 지역 매체 인디애나폴리스 비즈니스 저널(IBJ)은 지난 18일 보도에서 현지 부지 선정을 둘러싼 법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2025년 5월 현지 시의회가 주거지를 중공업 용지로 변경하자 지역 주민들은 안전과 주거 환경 저해를 이유로 용도변경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인디애나주 티피카누 순회법원은 SK하이닉스와 퍼듀 연구재단이 제출한 약식 기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2026년 12월 1일부터 3일까지 본안 심리를 진행하기로 일정을 확정했다. 주민 측의 공사 중단 가처분 신청 등 변수가 남아있으나 SK하이닉스는 최근 건물 구조물 건축 허가를 취득하고 시 당국의 인프라 개선 지원 속에 2028년 가동을 목표로 사업 추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7년까지 공급난 지속 전망…연방 보조금은 안착
반도체 업계는 HBM 생산라인 전환에 따른 범용 디램의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미국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지투데이터(Z2Data)는 2026년 보고서에서 오는 2027년까지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정점에 달할 수 있으며 수급 불균형 여파가 2030년까지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 정부의 보조금 지원 체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모양새다. 인디애나폴리스 비즈니스 저널은 지난 18일 보도에서 공화당이 제시한 국내 정책 패키지가 반도체 제조업체에 대한 세액 공제 혜택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고 전했다.
현 시점 기준으로는 제도 변화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게 반도체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미국 반도체 과학법(CHIPS Act)에 의거한 4억 5800만 달러(약 6828억 원)의 보조금과 최대 5억 7000만 달러(약 8498억 원) 규모의 대출 지원을 예정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컨설팅 기관 맥킨지(McKinsey)는 2026년 발표한 반도체 보고서에서 산업의 역사적 주기성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수요 성장을 낙관했다. 맥킨지는 과거의 하강기 사례를 보면 공급 과잉이나 수요 둔화로 침체를 겪더라도 통상 2년에서 3년 내에 이전 고점을 회복하고 성장세를 회복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향후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글로벌 생산 능력 확충을 위한 재원 조달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 나스닥(Nasdaq) 상장을 포함한 미국 자본시장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며 최대 280억 달러 수준의 자금 확보를 목표로 잡았다.
시장 모니터링을 위한 주요 지표
국내외 증권가와 글로벌 리서치 기관들은 향후 반도체 공급망과 완제품 시장의 방향성을 가늠하기 위해 세 가지 핵심 지표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지표는 엔비디아 지포스 RTX 50 슈퍼 시리즈의 공식 출시 일정과 권장소비자가격(MSRP) 책정 수준이다. 고가 부품 탑재에 따른 원가 압박을 엔비디아가 어떻게 분산할지가 향후 소비자용 그래픽 카드 시장 수급의 가늠자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 지표는 오는 2026년 12월 초로 예정된 미국 인디애나주 법원의 부지 용도변경 취소 소송 본안 심리 결과다. 미국 내 생산 거점 확대를 노리는 SK하이닉스의 현지 투자 일정에 실질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중요하다.
셋째 지표는 글로벌 IT 제조사들의 범용 디램 조달처 다변화 움직임과 대안 칩 채택 비율 추이다. 과점 체제의 틈새를 타 대안 칩 공급이 얼마나 확대되는지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지형과 장기 가격 안정화 시점이 결정된다.
톰스하드웨어는 19일 분석 기사에서 인공지능 시장으로의 급격한 쏠림이 범용 메모리 부족을 낳은 현 국면에서 가격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한 빅테크 기업들과 반도체 제조사 간의 중장기 공급 계약 체결 추이가 향후 시장 안정을 판가름할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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