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윤 모 씨(26)는 최근 동아리 부원들의 번개 모임 제안이 부담스럽다. 1년 반 동안 매일 출석할 만큼 애정을 쏟았던 동아리지만, 요즘에는 저녁 식사 제안에 “할 일이 많다”고 둘러대며 거절하는 일이 잦아졌다. 윤 씨는 “10번 정도 제안이 오면 7번은 거절한 것 같다”며 “친구에게 먼저 만나자고 말하는 일도 줄었다”고 했다.
고물가에 사람을 만나는 데 드는 비용이 크게 늘면서 청년층의 인간관계도 달라지고 있다. 식사와 커피, 술은 물론 영화·문화생활 등 모임에 드는 비용까지 오르면서 만남 자체를 줄이거나 비용이 적게 드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프렌드플레이션’ 현상이다. 친구(frien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신조어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대학원생 김 모 씨(25)도 올해부터 연인과의 데이트 횟수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치솟은 외식물가가 부담스러워지면서다. 성수동 카페나 체험형 공방을 찾던 데이트 방식도 한강 산책이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바뀌었다. 김 씨는 “데이트 한 번에 5만 원이 우습게 나간다”며 “여자친구와 데이트 비용을 아껴보자는 공감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물가 상승은 청년층의 모임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알바천국이 최근 전국 Z세대 6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물가 상승으로 친구와의 만남을 부담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71.2%는 최근 1년간 친구와의 모임 횟수나 지출 비용을 줄인 적이 있다고 했다. 가장 부담스러운 지출은 식사비(78.4%)였고 커피·디저트비(40.1%), 주류비(29.7%) 등이 뒤를 이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외식물가는 2.6% 올랐으며, 2020년과 비교하면 28.3% 상승했다. 모임에 필요한 주변 비용도 뛰었다. 지난 7월 오락·문화비와 교통비는 전년 동월보다 각각 5.5%, 7.7% 상승했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가거나 영화를 보는 평범한 만남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프렌드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원인은 결국 경제적 부담”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고물가와 소득 정체 속에서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항목이 약속·모임·식사 비용 등 인간관계 관련 소비”라며 “현재의 관계 축소 현상은 세대적 특성과 경제적 요인이 결합한 결과로, 경제적 여유가 회복될 경우 일부는 다시 복원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청년층을 옥죄는 것은 인간관계 비용만이 아니다. 생활의 기반인 주거비 부담도 커지면서 ‘주거 사다리’에 올라서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가을학기 개강을 앞두고 대학가 원룸 월세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달 등록된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 원룸의 평균 월세는 62만 5000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7.7% 상승했다. 평균 관리비도 7만 5000원에서 8만 4000원으로 10.9% 올랐다.
서울대 인근 원룸 월세는 1년 새 26.0% 올라 상승 폭이 가장 컸고, 한국외대(15.1%), 연세대(10.4%), 중앙대(9.4%), 한양대(9.2%) 등 주요 대학가에서도 월세가 일제히 뛰었다.
공급 부족도 문제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비아파트 착공 물량은 4597가구로 2022년 1만6406가구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세사기 여파로 월세 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재개발 등으로 원룸 공급 기반까지 줄면서 대학가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앙대 인근에서 만난 4학년 최 모 씨(26)는 “2년 전만 해도 월세 50만~60만 원 정도면 됐는데 요즘은 70만~80만 원”이라며 “관리비까지 더하면 한 달 거주비가 100만 원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고시원이나 하숙집으로 옮기거나 더 먼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취업시장에서는 AI가 청년층의 ‘경력 사다리’를 흔들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이 지난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출시 이후 4년 간 15~29세 청년 일자리는 28만 5000개 감소했다. 감소분의 94%인 26만 8000개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 집중됐다.
특히 고학력 청년의 취업 여건이 오히려 악화하는 역설도 나타났다. 챗GPT 출시 전 대졸 이상 청년의 평균 실업률은 8.2%로 전문대졸 이하(8.0%)와 격차가 0.2%포인트(p)에 불과했지만, 이후에는 각각 7.0%와 5.4%로 격차가 1.6%p까지 벌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료 검색·정리, 문서 작성, 기초 분석, 번역, 단순 코딩 등 초급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것이 비용을 줄이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문제가 달라진다. 신입이 초급 업무를 통해 경험을 쌓고 숙련자로 성장하는 ‘경력 사다리’ 자체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연구진은 “주니어 없이 시니어가 생기지 않는다”며 기업의 단기적인 AI 활용이 장기적으로 숙련 인력의 공급을 위축시킬 가능성을 지적했다. 단순히 청년 채용을 늘리는 것을 넘어 도제식 훈련과 멘토링 등 실제 경력 형성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물가는 만남을 줄이고, 높은 주거비는 청년을 더 열악한 공간으로 밀어내며, AI는 첫 직장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마저 좁히고 있다. 인간관계와 주거, 일자리라는 삶의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청년층이 사회에 진입하고 자립할 수 있는 통로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청년 문제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 졸업 이후 취업, 소득과 생활비 등 생애주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며 “청년세대의 성장 단계별 라이프사이클에 맞춘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일자리 문제’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으며 “이공계 직업훈련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산업과 직군이 요구하는 역량이 빠르게 바뀌는 등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책을 고정해두기보다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변화에 맞춰 대응하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