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글로벌 항공업계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배럴당 80~90달러 수준이던 항공유 가격이 최근 200달러 선까지 치솟자, 전 세계 항공사들은 수익성 악화를 방어하기 위해 운임 인상과 노선 감축이라는 고육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로이터 통신이 지난 13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항공사 운영 비용의 약 25%를 차지하는 연료비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폭등하면서 글로벌 항공업계는 기존의 재무 지침을 철회하고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이번 사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항공 수요에 찬물을 끼얹는 격으로, 여행객들의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운임 인상과 유류할증료 폭등… 승객 부담 전가 본격화
항공사들은 치솟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티켓 가격 인상과 유류할증료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항공권 가격뿐만 아니라 수하물 요금 등 부가 서비스 비용까지 한꺼번에 올리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항공사들은 가장 먼저 강도 높은 요금 현실화에 나섰다.
유나이티드 항공(United Airlines)의 스콧 커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급등한 연료비 상승분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항공권 가격을 15%에서 20%가량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아메리칸 항공(American Airlines)은 수하물 요금을 최대 150달러(약 22만 원)까지 전격 인상했으며, 에어프랑스-KLM 그룹은 장거리 노선 왕복 기준 좌석당 50유로(약 8만 7000원)의 추가 요금을 즉각 단행했다.
아시아권 항공사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중국의 ‘빅3’ 항공사인 에어차이나와 남방항공, 동방항공은 국내선 유류할증료를 기존 10~20위안 수준에서 최대 120위안(약 2만 6400원)으로 6배 이상 끌어올렸다.
인도의 아카사 에어(Akasa Air)와 인디고(IndiGo) 역시 노선별 거리와 연료 소모량을 산정해 차등화한 연료 부과금을 신설하며 고유가 대응에 가세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항공사들이 유가 상승이라는 외부 변수를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익성 보전을 위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국내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국제 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급등하는 ‘쌍둥이 악재’ 상황”이라며 “유류할증료가 거리별로 세분화되면서 장거리 노선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체감 비용은 공시 가격보다 훨씬 더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선 감축과 비상 경영… ‘스피릿 항공’ 결국 파산
연료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일부 항공사는 운항 자체를 포기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특히 저비용항공사(LCC)들의 타격이 극심하다.
미국의 저가 항공사인 스피릿 항공(Spirit Airlines)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연료비 폭등과 누적된 재무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최근 급작스럽게 영업을 중단했다. 이는 고유가 사태가 항공업계의 ‘생존 게임’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다른 항공사들도 방어적인 태세로 전환했다. 루프트한자(Lufthansa) 그룹은 오는 10월까지 2만 회에 달하는 단거리 비행 일정을 삭제하기로 했으며, 타이항공과 에어 뉴질랜드 등은 올해 수익 전망치를 일제히 하향 조정하거나 정지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연료비 절감을 위해 오는 4월부터 7월 사이 22개 노선의 운항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고유가 장기화 시 항공업계 재편 불가피”
에너지 시장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항공유 가격의 하향 안정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월가에서는 올해 주요 항공사들의 추가 연료비 지출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메리칸 항공은 올해 연료비로만 지난해보다 40억 달러(약 5조 9700억 원)를 더 지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의 일반적인 평가는 대형 항공사보다 완충 지대(Hedging)가 부족한 중소 항공사들이 먼저 한계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이다.
증권가에서는 “유가 200달러 시대에는 전통적인 수익 모델이 작동하기 어렵다”며 “항공사들이 유료 서비스를 강화하고 좌석 밀도를 높이는 등 수익성 극대화에 사활을 걸면서 항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가격 인상을 넘어, 글로벌 항공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비용 구조를 견디지 못하는 부실 항공사들의 퇴출과 대형사 중심의 시장 재편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