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국제유가 급등이 뜻밖의 전기차(EV) 판매 붐을 이끌고 있다.
보조금과 규제에 의존하던 전기차 수요가 처음으로 ‘시장 자체 동력’으로 확산하는 조짐이 나타난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발표한 ‘2026 세계 전기차 전망’ 보고서에서 “이번 에너지 위기대응 방식이 앞으로 수년간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현지시각)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S&P글로벌모빌리티 데이터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데이터 확보가 가능한 150개국 가운데 3월에 단월 기준 전기차 판매 최고치를 경신한 나라는 호주·영국 등 28개국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4월에도 브라질·필리핀 등 9개국이 새 기록을 세웠다. 3·4월 모두 91%에 달하는 국가에서 전기차 판매가 전년 같은 달을 웃돌았다. 이는 2023년 4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국이 9할을 넘어선 것이다.
중동 의존도 높을수록 전기차 반사 이익 뚜렷
원유의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3∼4월 전기차 판매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4배 늘어난 8만 대를 기록했다. 전기차 보급률은 14%포인트 오른 26%로 높아졌다. 동남아시아도 40% 늘어난 9만 대로 시장 점유율 16%에 도달했다. 유럽연합(EU)도 한때의 침체를 벗어나 40% 증가세를 나타냈다.
IEA는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의 경우 4월 평균 유가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전기차 운행의 연간 연료비 절감액이 2025년 대비 35% 커졌다고 분석했다. 유가 상승이 전기차의 경제적 이점을 직접 키운 셈이다.
중동 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액화천연가스(LNG) 수송이 심각하게 차질을 빚으면서, 가솔린 차량 운전자는 전기차 운전자보다 유가 상승에 다섯 배 더 노출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국내 시장에서도 변화가 가시적이다. 올해 1분기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 집계에서 순수 전기차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두 배 늘어난 3만 4689대가 팔린 반면,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내연기관 모델은 12.4% 줄었다. 고유가 파급 효과가 구매 행동에 직접 반영된 결과다.
미·중 동반 부진 속 ‘나머지 세계’ 50% 급증
전체 그림은 다소 엇갈린다. 중국은 1월부터 전기차 세금 감면 혜택이 축소되면서 3∼4월 판매가 8% 줄어든 133만 대에 그쳤다. 지난해 9월 보조금이 끊긴 미국도 20% 감소했다. 두 거대 시장의 동반 부진으로 세계 전체 증가율은 8%에 머물렀다.
그러나 미국·중국을 제외한 148개국에서는 50% 증가에 신규 판매 전기차 비율도 1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IEA는 2026년 전기차 판매가 23만 대를 넘어 신차의 약 3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2025년 전기차 판매가 처음으로 2000만 대를 돌파하며 전체 신차의 25%를 차지한 데서 더 오른 수치다.
이 흐름 속에서 중국 제조사들의 세력 확장도 두드러진다. 중국 자동차 업계 단체 발표에 따르면 4월 수출은 70% 늘어난 90만 대였으며,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V) 등 신에너지차는 2.1배인 43만 대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IEA는 미국·유럽·중국 이외 시장에서 지난해 팔린 전기차·PHV의 55%가 중국산이었다고 집계했다. 국내에서도 비야디(BYD)의 올해 1∼4월 판매량은 599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3% 폭증했고,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점유율은 1년 새 0.5%에서 4.3%로 8배 이상 뛰었다.
보조금 주도에서 시장 주도로… 1970년대 오일쇼크의 교훈
이번 전환의 역사적 의미는 작지 않다. 1970년대 오일쇼크는 연비 나쁜 대형차 시장을 위축시키며 일본 소형차가 세계 무대에 오르는 계기가 됐다. 전기차를 직접 경험하는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중동 긴장이 완화되더라도 전기차 비중 확대의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IEA는 “배터리 가격 하락 추세와 현재 에너지 위기에 대한 각국 정책 대응이 전기차 추진력을 더욱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보조금 지급이 유지되는 일본은 3∼4월 전기차 판매가 50% 늘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2%에 불과해, 정책 공백 시 취약성을 드러냈다.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이 수출로 전환되면서 각국과의 무역 마찰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도 시장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