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식은땀이 난다. 눈앞이 흐려지고 귀가 먹먹해지더니 온몸에 힘이 빠지기 쉽다. 심하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이런 증상은 흔히 공황장애나 뇌전증을 떠올리게 하지만 의외로 흔한 원인 중 하나가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이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부교감신경 중 하나인 미주신경이 특정 상황에 과도하게 반응해 혈압이 떨어지거나 심박수가 느려지면서 뇌 혈류가 일시적으로 감소해 발생한다. 실신 자체보다 넘어지며 머리를 다치거나 골절되는 2차 손상이 더 큰 문제다.
실신은 생각보다 흔하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전체 인구의 약 20~30%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할 정도로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신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이 원인으로 진단된다. 남성보다 여성에서 1.5배 더 많이 발생한다.
신승용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심뇌혈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은 여러 유발 요인과 개인의 자율신경 반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며 “단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미주신경이 약해져 생긴다고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오래 서 있거나 더운 환경에 노출됐을 때, 심한 통증이나 공포를 느꼈을 때, 채혈이나 주사를 맞을 때 잘 발생한다. 여기에 수면 부족과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 탈수 등이 겹치면 실신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실신하기 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다. 어지럼증과 현기증, 메스꺼움, 식은땀, 창백함,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시야가 흐려지거나 좁아지는 느낌, 귀가 먹먹해지는 증상, 두근거림, 하품, 전신 무력감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전조증상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어지럼증이 먼저 나타나지만, 다른 사람은 소화가 안 되는 듯한 불쾌감이나 메스꺼움부터 느낄 수 있다. 특별한 전조 없이 갑자기 힘이 빠지는 경우도 있다.
윤지은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교수는 “미주신경성 실신은 일시적인 의식 소실과 함께 경련과 유사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어 뇌전증과 혼동되기도 한다”면서 “처음 실신이 발생했다면 전문의 진료를 통해 다른 심각한 원인 질환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신 전 증상이 느껴졌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지 않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며 서 있다가 의식을 잃으면 그대로 넘어져 크게 다칠 수 있다. 안전한 곳에 즉시 앉거나 가능하다면 눕고, 누울 수 있다면 다리를 올리는 게 좋다.
완전히 눕기 어렵다면 다리를 꼬고 양쪽 다리에 힘을 주거나, 양손을 맞잡아 서로 당기는 등 신체 역압 동작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평소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과도한 피로와 탈수를 피해야 한다. 자신에게 실신을 유발하는 상황이 있다면 이를 미리 파악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모든 실신을 미주신경성 실신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부정맥이나 구조적 심장질환 때문에 발생하는 심장성 실신 등이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훨씬 중요한 원인이 숨어있을 수 있다.
특히 운동 중에 발생한 실신, 가슴 통증이나 심한 두근거림과 함께 발생한 실신, 특별한 전구증상 없이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의 실신, 반복적으로 발생하거나 이전과 양상이 달라진 실신은 전문적인 의료진의 정밀한 평가가 요구된다.
윤 교수는 “미주신경성 실신은 대부분 양성 경과를 보이며 적절한 예방과 대처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면서도 “뇌전증과 혼동되는 경우도 있어 정확한 감별진단과 전문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도 “비슷한 조건을 만나면 같은 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실신을 일으키는 상황을 피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라며 “전구증상을 일찍 알아차리고 즉시 앉거나 눕는 것만으로도 실제 실신이나 낙상으로 인한 외상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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